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한일 관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밝힌 후 관방 장관이었던 스가 관방장관이 스가 총리가 되었습니다.
스가 총리는 과거 몇 차례 한일 관련 문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던 인물인지라 국내 여론은 한일 관계가 쉽사리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습니다만 다른 한쪽에서는 원래 친한파에 가깝지만 아베 신조 아래 관방장관의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견해도 내놓았습니다.
그에 따라 어쩌면 양국 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여론은 한일 관계 개선을 바라지도 않고 회복이 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노재팬을 유지하며 살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최근 오랜시간 팬 층이 두껍던 플레이 스테이션 PS5 사전예약이 성황을 이루며 선택적 불매 운동이냐 이러니 일본이 우리를 무시한다라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그의 인기는 비교적 '흙수저 정치인'
스가 총리의 인기 키워드는 바로 '흙수저 정치인'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정말 흙수저는 아니었음이 알려졌지만(최소 은수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계의 몇 대간의 세습에 비교하자면 그는 정말 그 세계 안에서 만큼은 흙수저 임은 분명합니다.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세습정치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라 믿는 일본 국민들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스가 총리는 1948년 아키타현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고교 졸업 후 도쿄로 상경하여 박스 공장과 시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다른 이들보다 약 2년 늦은 나이에 호세이대 법학부에 입학하였다고 합니다.
스가 총리는 1975년 중의원 의원 오코노기 히코 사부로의 비서가 된 것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이후 11년간 비서로 근무 후 요코하마시 의원을 두 차례 지냈습니다.
그리고 1996년 10월만 47세 때 중의원 의원에 첫 당선을 하게 됩니다.
스가 총리는 관방장관 당시 관저에서 하루 두 번 열리는 정례 기자회견에 기자들의 집요한 질의를 무표정하게 넘기는 모습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생긴 그의 별명은 '웃지 않는 대변인'이라고 합니다.
한일관계 개선은 글쎄..
스가 총리 내각은 9월 16일부터 공식 출범되었으나 아베 총리의 사임으로 그의 임기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의 임기는 2021년 9월까지 입니다.
즉 임기 동안 무언가를 극적으로 변화시킬만한 시간은 없다고 보이며 더군다나 그동안 그가 해온 망언들을 종합하였을 때 한일 관계 개선은 없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해 9월 아사히 TV에 출연하여 한일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은 전부 한국에 책임이 있으며 자국 기업들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피해배상 판결은 잘못된 것임을 주장하였습니다.
마무리
스가 총리의 임기가 1년 남짓한 것과 일본 내에서도 처리해야 하는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어 사실상 스가 총리의 임기 기간 동안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길은 보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그의 원래 성향이 친한파였다며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떠한 부분에서 그가 친한파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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